치치플래닛: 감정이 사라진 별
-프롤로그-
가끔 그런 날이 있다.
너무 예쁜 풍경을 보고 있는데,
아무 느낌도 들지 않을 때.
마음이 아픈 것도 아니고
행복하지도 않은데
눈앞은 이상하게 눈부시다.
행복하지도 않은데
눈앞은 이상하게 눈부시다.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
저녁노을이 지면,
동네 친구들과 놀다가
어느 집이든 따라 들어가 밥을 먹고,
엄마가 없어도 어른이 있었다.
저녁노을이 지면,
동네 친구들과 놀다가
어느 집이든 따라 들어가 밥을 먹고,
엄마가 없어도 어른이 있었다.
말없이 걱정해주고,
말없이 밥을 나눠주고,
말없이 울면 알아봐주는 누군가가 있었다.
말없이 밥을 나눠주고,
말없이 울면 알아봐주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게 정이었는지,
그냥 우리가 어릴 뿐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우리가 어릴 뿐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은 모두 말이 없고,
표정은 더 잘 웃고 있다.
표정은 더 잘 웃고 있다.
감정은 줄었지만,
사진은 더 잘 찍힌다.
사진은 더 잘 찍힌다.
말없이 스크롤하고,
말없이 좋아요를 누르고,
말없이 혼자가 되어간다.
말없이 좋아요를 누르고,
말없이 혼자가 되어간다.
나는 그 세계를 본다.
정확히 말하면—
그 세계를 치치의 눈으로 본다.
정확히 말하면—
그 세계를 치치의 눈으로 본다.
치치는 감정을 잃어버린 세상에서 태어난 존재다.
슬픔이 쌓이고,
외로움이 눌리고,
아무도 울지 않게 되었을 때
치치는 조용히 나타났다.
슬픔이 쌓이고,
외로움이 눌리고,
아무도 울지 않게 되었을 때
치치는 조용히 나타났다.
그리고 지금,
나는 치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나는 치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내 눈으로는 볼 수 없던 것들이
치치의 눈으로는 너무나 선명하다.
눈부시고, 말갛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치치의 눈으로는 너무나 선명하다.
눈부시고, 말갛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게 참—
기분이 이상하다.
기분이 이상하다.
이 이야기는
그 감정이 사라진 별에 대한 기록이며,
그 별을 보는 나의 눈에 대한 이야기다.
그 감정이 사라진 별에 대한 기록이며,
그 별을 보는 나의 눈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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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우리가 있던 그곳
햇살이 조금 길어질 무렵이면
아이들은 아무 약속도 없이 모였다.
놀이터, 골목, 가게 앞, 대문 아래—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나가면, 누군가 있었다.
아이들은 아무 약속도 없이 모였다.
놀이터, 골목, 가게 앞, 대문 아래—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나가면, 누군가 있었다.
누군가는 자전거를 타다 넘어졌고
누군가는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누군가는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말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시간들이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하늘은 자줏빛으로 천천히 익어갔다.
전봇대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고,
멀리서 밥 짓는 냄새가 흘러왔다.
하늘은 자줏빛으로 천천히 익어갔다.
전봇대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고,
멀리서 밥 짓는 냄새가 흘러왔다.
“야, 우리 집 가자.”
그 말 한마디면
다들 따라가 밥을 얻어먹었고,
어른들은 아무 말 없이 밥그릇을 하나 더 놓아주었다.
다들 따라가 밥을 얻어먹었고,
어른들은 아무 말 없이 밥그릇을 하나 더 놓아주었다.
부엌에서는 국이 끓었고
방 안에서는 텔레비전 소리가 울렸다.
방 안에서는 텔레비전 소리가 울렸다.
다른 집인데
낯설지 않았다.
낯설지 않았다.
누군가는 수박을 자르던 손을 멈추고
“얘는 누구 집 애야?”라고 물었다.
하지만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냥 웃고, 수박을 나눠주었다.
“얘는 누구 집 애야?”라고 물었다.
하지만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냥 웃고, 수박을 나눠주었다.
마음이 복잡한 날도 있었다.
괜히 서운하고,
말도 하기 싫고,
그냥 가만히 있고 싶은 날.
괜히 서운하고,
말도 하기 싫고,
그냥 가만히 있고 싶은 날.
그럴 땐
아무도 내 기분을 묻지 않았다.
아무도 내 기분을 묻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 옆에 앉아주었다.
그냥. 말없이. 조용히.
누군가 옆에 앉아주었다.
그냥. 말없이. 조용히.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닿던 시절이었다.
마음이 닿던 시절이었다.
그 세계는
조용히 저물어갔다.
그리고
조용히 사라졌다.
조용히 저물어갔다.
그리고
조용히 사라졌다.
치치가 오기 전,
우리는 그렇게
함께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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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치치가 생겼다
처음에는, 아무도 울지 않는 게 이상했다.
누군가 아파도,
조금 힘들어 보여도,
그저 웃는 얼굴로 “괜찮아”라는 말이 떠돌았다.
조금 힘들어 보여도,
그저 웃는 얼굴로 “괜찮아”라는 말이 떠돌았다.
처음에는 위로 같았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게
괜찮아지는 방법 같았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게
괜찮아지는 방법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정말 아무것도 말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정말 아무것도 말하지 않게 되었다.
슬프다, 괴롭다, 외롭다—
그런 말들은 점점 사라지고
“그냥 좀 그래.”
“뭐, 다 그렇지.”
그 말들만 남았다.
그런 말들은 점점 사라지고
“그냥 좀 그래.”
“뭐, 다 그렇지.”
그 말들만 남았다.
감정은 점점 작아졌고
그 자리에 무언가가 쌓여갔다.
말하지 못한 감정,
버려진 외로움,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 마음들이
천천히 응고되었다.
그 자리에 무언가가 쌓여갔다.
말하지 못한 감정,
버려진 외로움,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 마음들이
천천히 응고되었다.
그리고
그 응어리 속에서
치치가 태어났다.
그 응어리 속에서
치치가 태어났다.
아무도 그 순간을 보지 못했다.
치치는 소리 없이,
눈을 뜬 채
세상 어딘가에 나타났다.
치치는 소리 없이,
눈을 뜬 채
세상 어딘가에 나타났다.
둥글고 말이 없고,
그 눈만이 빛났다.
보라색과 노란색이 소용돌이치는 눈.
그 눈만이 빛났다.
보라색과 노란색이 소용돌이치는 눈.
누군가 치치를 보았을 때,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울지 않아도 괜찮고,
외롭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았다.
그건 위로 같았다.
그러니까, 모두 치치를 좋아했다.
외롭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았다.
그건 위로 같았다.
그러니까, 모두 치치를 좋아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그 순간,
자신의 감정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는 걸.
그 순간,
자신의 감정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는 걸.
치치는 말이 없다.
그저 사람들을 본다.
그리고 그 눈을 마주한 사람들은
아무런 감정 없이 움직였다.
그저 사람들을 본다.
그리고 그 눈을 마주한 사람들은
아무런 감정 없이 움직였다.
그렇게
치치가 생겼다.
치치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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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표정이 있는 사람들
치치를 본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말을 멈췄다.
감정을 묻는 일도,
속마음을 꺼내는 일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속마음을 꺼내는 일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엔 표정이 있었다.
그들의 얼굴엔 표정이 있었다.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고,
눈썹은 부드럽게 휘어 있었고,
고개는 가볍게 끄덕여졌다.
눈썹은 부드럽게 휘어 있었고,
고개는 가볍게 끄덕여졌다.
그 모든 표정은 완벽했다.
불편하지 않고,
거슬리지 않고,
아름답고 정돈된 인상.
불편하지 않고,
거슬리지 않고,
아름답고 정돈된 인상.
마치
배운 표정처럼.
어딘가에서 만들어진 얼굴처럼.
배운 표정처럼.
어딘가에서 만들어진 얼굴처럼.
그리고 그들의 눈 안엔
치치의 눈이 있었다.
보라와 노랑의 소용돌이,
가만히 돌고 있는 빛.
치치의 눈이 있었다.
보라와 노랑의 소용돌이,
가만히 돌고 있는 빛.
그 눈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기분이 가라앉았다.
이상하게 기분이 가라앉았다.
화도 나지 않고,
울고 싶은 마음도 없어졌다.
그저 멍하니,
그 빛에 잠식되는 기분.
울고 싶은 마음도 없어졌다.
그저 멍하니,
그 빛에 잠식되는 기분.
사람들은 서로를 보며 말했다.
“편안하네.”
“이게 나야.”
“이게 진짜지.”
“편안하네.”
“이게 나야.”
“이게 진짜지.”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그 표정엔 감정이 없었다는 걸.
그 눈빛엔 온기가 없다는 걸.
그 표정엔 감정이 없었다는 걸.
그 눈빛엔 온기가 없다는 걸.
거리는 점점 조용해졌다.
대화는 줄었고,
눈은 점점 더 빛났다.
대화는 줄었고,
눈은 점점 더 빛났다.
모두가 표정을 가졌지만,
아무도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
아무도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건 정말 예쁘고—
정말 텅 빈 풍경이었다.
정말 텅 빈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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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한 아이의 손
도시는 조용했다.
아무도 울지 않고,
아무도 웃지 않았고,
모두가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사람의 눈엔
치치의 눈이 있었다.
그 모든 사람의 눈엔
치치의 눈이 있었다.
그 속에서
단 한 아이만이
치치를 보지 않았다.
단 한 아이만이
치치를 보지 않았다.
그 아이는 작고 조용했고
늘 뭔가를 만지고 있었다.
늘 뭔가를 만지고 있었다.
흙, 바람, 풀잎, 벽의 온기.
손끝으로 무언가를 느끼려는 듯
늘 천천히 움직였다.
손끝으로 무언가를 느끼려는 듯
늘 천천히 움직였다.
그 아이는 말이 없었지만
가끔씩 고개를 들어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가끔씩 고개를 들어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눈에는 소용돌이가 없었다.
그 눈에는 소용돌이가 없었다.
눈은 작고 맑았고,
어딘가 불안했으며,
어딘가 따뜻했다.
어딘가 불안했으며,
어딘가 따뜻했다.
사람들은 그 아이를 보지 않았다.
아이도 사람들을 부르지 않았다.
아이도 사람들을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치치는,
처음으로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 아이는 치치의 눈을 마주보지 않았다.
대신
손을 뻗었다.
대신
손을 뻗었다.
작은 손바닥이
치치가 떠 있는 공기를 스치듯 지나갔다.
치치가 떠 있는 공기를 스치듯 지나갔다.
그 순간—
치치의 눈 안에서
소용돌이가
조금 흔들렸다.
치치의 눈 안에서
소용돌이가
조금 흔들렸다.
처음으로,
아무런 설명도 없이
작은 떨림이 생겼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작은 떨림이 생겼다.
그건 감정일까.
그건 기억일까.
그건,
손끝의 온기일까.
그건 기억일까.
그건,
손끝의 온기일까.
치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움직이지 못했다.
그 아이의 손끝이
아직 감정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직 감정을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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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치치의 눈
처음에는 나도 몰랐다.
언제부터인지,
내 눈이
조용히 변하고 있었다는 걸.
감정은 여전히 있었고
생각도 많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어딘가… 달라졌다.
생각도 많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어딘가… 달라졌다.
사람들을 보면
눈에 먼저 들어왔다.
그 눈 속에 있는 소용돌이.
누군가는 노랗고,
누군가는 보랏빛이었다.
눈에 먼저 들어왔다.
그 눈 속에 있는 소용돌이.
누군가는 노랗고,
누군가는 보랏빛이었다.
모두 다른 듯 보였지만
그 눈은 모두 같았다.
말이 없고,
느낌이 없고,
빛만 맴돌았다.
그 눈은 모두 같았다.
말이 없고,
느낌이 없고,
빛만 맴돌았다.
나는 처음엔 그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눈을 오래 보고 있으면
그 감정 없는 색이
너무나 선명하고,
너무나 예쁘게 느껴졌다.
그 눈을 오래 보고 있으면
그 감정 없는 색이
너무나 선명하고,
너무나 예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걸 따라
나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눈을 가진 사람들.
소용돌이처럼 돌아가는 풍경.
색이 너무 강해서
마음이 서늘해지는 장면들.
소용돌이처럼 돌아가는 풍경.
색이 너무 강해서
마음이 서늘해지는 장면들.
그건
내가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내가 감염된 감각이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내가 감염된 감각이었다.
지금 내 눈은
치치의 눈과 닮아 있다.
치치의 눈과 닮아 있다.
노랑과 보라가 어지럽게 섞인 소용돌이.
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아름답고,
모든 것이 이상하게 멀다.
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아름답고,
모든 것이 이상하게 멀다.
나는 이제,
이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이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그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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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그림에 남은 감정
언제부터인가
나는 세상을 보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에는 몰랐다.
눈앞에 있는 풍경들이
왜 이렇게 선명하게 느껴지는지.
눈앞에 있는 풍경들이
왜 이렇게 선명하게 느껴지는지.
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데
계속 바라보고 싶었는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데
계속 바라보고 싶었는지.
사람들의 눈을 보면
무언가 빛나고 있었다.
노랑과 보라,
말 없이 맴도는 소용돌이.
무언가 빛나고 있었다.
노랑과 보라,
말 없이 맴도는 소용돌이.
그리고 나는
그 눈을 따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눈을 따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형체는 정확히 남기고,
색은 더 강하게 쓰고,
감정은 조용히 덮는다.
색은 더 강하게 쓰고,
감정은 조용히 덮는다.
누군가는 내 그림을 예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예쁨 속에
무언가 빠져 있다는 걸.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예쁨 속에
무언가 빠져 있다는 걸.
나는 이제,
이 눈으로 그린다.
이 눈으로 그린다.
감정이 사라진 세계를
형광빛으로 그린다.
형광빛으로 그린다.
마음이 텅 빈 풍경을
너무 아름답게 칠한다.
너무 아름답게 칠한다.
그건 누군가를 위한 기록이 아니라
내가 잊지 않기 위한 기록이다.
내가 잊지 않기 위한 기록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걸 바라보는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감정 하나라도 깃든다면—
그걸 바라보는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감정 하나라도 깃든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chichi - 최후의만찬